횡설수설

새해 첫 공짜? .. 아니 새해 첫 채무?

권성재 2008. 1. 2. 20:46
2008년 1 월 1일 날씨 맑음, 강풍, 한파

실컷 자고 나니
이미 "그놈의 해"가 중천.
꿈자리 여운인가? 잔향이 아직 코끝에서 느껴지는 듯.
가볍다. 하늘이 맑다.
칼바람 막을 "내 식대로" 완전무장을 하고 집을 나섰다.
목도리라는 게 그냥 길쭉한 천 쪼가리일 뿐인데..
그거 하나 목에 두르고 입주위를 감싸니
산능성이 위를 거칠게 몰아치는 찬바람이 무섭잖다..
이걸 왜 몰랐을까
쪽두리봉 지나 향로봉, 비봉 능선 따라.. 사모바위 그리고 문수봉
..
이놈의 북한산은 만만하기도 하다.
대단한 고행의 장소라도 되는냥..
걸핏하면 고뇌하는 구도자가 화장실 배설하듯
되지도 않는 사념을 지저분하게 흘리면서
발아래 잡힐 듯 펼쳐진 번잡한 인간들의 번식지를
눈 깔고 내려다 볼 수 있으니..
..
독바위역에서 불광사입구로 들어간 후
체육공원 지나 계곡 약수터에서 자그마한 병에 물을 담고 잠시 휴식.
확실히 도보하는 근육과 등산하는 근육은 다르다.
도보는 똑같은 동작을 반복하므로 사용하는 근육도 정해져 있는데
등산은, 특히 북한산 같이 바위길 험한 경우는 하체의 다양한 근육을 쓰고
더 긴장을 하게 된다. 물론
그래서 더 무리가 가기도 하지만.
그래서 무리하고 싶어 환장할 때마다 찾는 곳이기도 하지만.
..
..
또 한 살 먹은건가?
지난 한해.. 
몸부림치며 만들어온 나이테는 어떤 모양으로 그려졌을까나..
언제부턴가.. 잃어버린 길을 찾으려고 긴장하기 시작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한다면..
잃어버렸다고 단정해버린 길을..
찾아야된다고 단정해버리고  찾아나선 거 같다.
찾아진 길이 아닌 길은 "내 길"이 아니므로..
계속 나아가는 건 의미없다고 여겨버리고
내 길이 찾아지면 그 때  그 길을 열심히 가겠다고 생각해버린 듯하다.
내가 "길을" 잃어버렸나..
그 길을 찾을 "맘을" 잃어버렸나..
잃어버린 건 길이 아니라 "걸을 맘"이 아니었을까..
.. 진퇴양난 ..


>> 새벽닭 울 때 나가 일하고
>> 달 비친 개울에 호미 씻고 돌아오는
>> 그 맛을 자네 아능가  -- [조지훈의 '산중문답' 중에서]


문수봉 정상 - 해발 727 미터
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입니다.
북풍한설에 너덜너덜 닳아간다고 아우성 칩니다.
바위 절벽 위 세찬 눈바람에 서있는 소나무.
시퍼렇게 추위에 질린듯 찬 바람소리 만들어내는 솔가지 그 끝에
까치 한마리가 몸을 동그랗게 옹송그리고 앉아서 짧은 비명을 지른다.
건너편 마주보이는 보현봉 주위로는 까마귀 떼가 날아다닌다.
까만 날개가 햇살에 비쳐서 윤이 난다.
..
웃도리는 여러겹 껴입어서 안추운데
아랫도리는 두꺼운 등산복 하나만 달랑입었더니 찬바람이 종아리를 파고든다.
눈올 때 착용하는 스패츠를 꺼내 종아리에 감았다.
훨씬 낫다.
시야가 멀리까지 뻗어간다. 사방을 천천히 둘러본다.
북쪽의 삼각산 도봉산 험한 봉우리들
동쪽의 상계,중계,하계의 다닥다닥 아파트촌
남쪽의 종로 한강 그리고 강남의 빌딩숲
서쪽의 일산 파주 은평뉴타운 공사장..
..
남들은 일이분  잠깐 구경하고 서둘러 내려가는데
정상에서 한시간 가까이 멍하게 서 있었다.
손이 곱아서 손가락이 잘 안움직이는 이 느낌.. 참 오랜만이다.
두꺼운 등산화 속 발가락도 얼얼하다.
.. 그런데 어쩌란 말이냐..
.. 귀때기를 쳐대는 바람아.. 어쩌란 말이냐..
.. 발아래 밟혀있는 바위야.. 어쩌란 말이냐..
..
..
60 넘은 듯한 중년의 등산객이 
제자 혹은 부하 직원인 듯한 젊은이 몇명과 같이
찬바람 등지고 서서 나즈막하고 젊잖은 목소리로 담소를 하고 있었다..
"우리 군생활할 때..
미군애들이 군함끌고 와서  한미합동훈련하는데.. 
쓰레기통을 뒤졌었다고..
미군애들 보는 데서는 그러지 말라고 아무리 경고를 해도..
낮은 포복으로 기어가서 미군 쓰레기를 뒤졌었어..
우리나라가 그런 나라였었다고 ......"
지난 한해.. 그렇게 하면 나라 망한다고 발버둥치는 한쪽과..
그렇게 해야 나라 살린다고 게거품 물며 싸움질하더니..
결국 정권이 뒤집어지고 말았다..
자기 세상이 온 것 같이 만세를 부르는 사람과..
아직도 분하고 억울함이 안풀린 사람들이..
똑같은 저 2008년의 태양을 맞이하겠지..

>> ...
>> 소원이 뭐가 있능고
>> 해마다 해마다 시절이나 틀림없으리라고
>> 비는 것뿐이제
>>
>> 마음 편케 살 수 있도록
>> 그 사람들 나라일이나 잘 하라꼬 하게
>> 내사 다른 소원 아무것도 없네
>> 자네 이 마음을 아능가
>> ...

부처님과 그 양옆에 자리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
이렇게 세 분을 일컬어 "석가삼존"이라고 한다.
문수보살은 지혜를 상징하며 위엄있는 사자를 타고 다니고,
보현보살은 중생구제를 향한 실천행을 뜻하는데 흰 코끼리를 타고 다닌다고 한다.
이 보살들의 이름을 따서 지은  문수봉과
바로 맞은편에서 어깨를 나란히 하고 솟아 있는 보현봉 사이에 대남문이 있고..
그 대남문옆으로 문수봉 정상 조금 아래 경치좋은 곳에
"문수사"라는 자그마한  절이 있다.
문수사에는 문수굴이라는.. 바위를 뚫은 동굴이 있는데 거기가 기도발이 좋은지
입구에 누각을 세워서 사람들이 찬바람 피해서 기도할수 있게 해 놓았다.
기도발은 스님들만 따지는게 아닌 모양이다.
요즘도 그러는지 모르겠는데..
모 교회신도들이 밤 12시 넘는 시각에 보현봉 꼭대기에서
무슨 방언기도인지.. 알아듣지도 못하는 말로 한밤 정적을 깨트리며 소리지르곤 한다.
그럴 땐 한폭의 수묵화 같은 주위 풍경이 .. 좀 괴기스러워진다..
..
몇시간 산 속을 돌아다니다 보니 커피생각이 간절했다.
한 스님이 문수굴 입구에 있는 커피 자판기에 물과 커피를 채워놓고 있었다.
한참 기다려 곱은 손가락을 겨우 움직여 지갑에서 천원짜리를 거내어
동전교환통에서 동전을 어떻게 교환해야하나 어리버리하고 있는데..
그 스님이 커피 한잔을 뽑아서 건네준다.
천원을 건네주려고 하니 손사레를 하면서 그냥 마시라고 한다..
첫 해가 기울어간다.
..
새해 첫 공짜? .. 아니 새해 첫 채무?


>> 노인은 눈을 감고 환하게 웃으며
>> 막걸리 한 잔을 따뤄 주신다
>> 예 이 맛은 알 만합니더
>> 청산백운(靑山白雲)아
>> 할 말이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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