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

서해안 밤샘도보 하고 나서..

권성재 2007. 8. 20. 00:17
8/18 서해안 밤샘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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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큼한 땀냄새가 향긋한 청국장 냄새로 발효되어 버스안 에어콘 바람에 흩날려서인지
옆에 앉아 mp3 듣던 여고생이 조용히 일어나 다른 자리로 가버린다.
42Km ... 많이도 걸었다.. 하루밤에..
아침해 뜨자 다시 세상은 찜통더위... 오랜만에 보는 차창밖 신록의 시골풍경..
들판의 쌀나무는 벌써 이삭을 한뼘이나 꽂꽂하게 치켜세우고 있고, 하얀 봉지속 포도송이는
까맣게 익어 온갖 벌레들을 달콤하게 유혹하겠지.. 검은 비닐 이랑 위에서 발갛게 익어가는 고추를 보며
올 여름도 갈 데까지 갔구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2. 훤히 동이 튼 이른아침, 전곡리 버스 정류장을 향해 마지막 힘을 내서 아무 생각없이들 걸어가는데
무사 완주를 축하하려는지.. 가져간 우산이 무안치 않게 하려는지 ..
옅은 구름이 지나가며 살짝 빗방울을 뿌려준다..
버스타기 전 허기를 달래려고 길가 식당으로 10여명이 아침댓바람에 들이닥쳤다.
아무도 없는 식당, 시원님의 우렁찬 호출소리에 근처 텃밭에서 일하던 아주머니가 종종걸음으로
달려온다. 혼자서 한참 분주하게 요리한 얼큰한 된장찌게와 청국장.. 후식으로 계란 후라이까지 먹었다.
대부도에서 어제(오늘인가?) 밤참으로 맛있게 먹은 해물칼국수와 막걸리가 없었다면
아마 더 지치고 힘들었을꺼다.
든든하게 먹으니 걷기가 훨씬 수월하다.


3. 마라톤 풀코스, 어떤이는 쉬지않고 뛰어서도 가는데 쉬엄쉬엄 걸어서 못가랴.. 그까이꺼..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이제 겨우 한 번 참석한 초짜가 좀 힘들지 않을까..
오이도역앞에서 바로 시작한 도보.. 몇키로 못가 선두는 벌써 까마득히 앞서가고..
6 ~7 Km 지나 시화호 방조제 입구에 가서야 잠시 쉰다.. 다행히 아직 낙오는 없다..
처음에 속도를 올려야 나중에 걷기 쉽다지만.. 벌써 아랫도리는 뻐근하다..
악명높은 시화호.. 근처만 가면 썩은 악취가 나고 죽은 물고기가 먼저 떠오르지만 직접보니 모르겠다.
서해바다 보이는 갓길을 따라 중간중간 낚시하는 사람들.. 자리펴고 누워 뒹구는 사람들..
고기 구워먹는 사람들, 넉살좋은 초인종님 덕분에 그들에게서 소주한잔 삼겹살 한점 얻어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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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약간의 바닷바람이 불어 시원했다.. 30리 방조제 곧은 길.. 길잃을 염려 없어서인지..
도보 속도는 외려 더 빠르다.. 이번에는 쳐지지 않으려고 선두에 바짝 붙어간다..
잠시 같이 걷게된 "지구여행자79"님.. 680 Km 국토대장정을 했었단다.. 자그마한 아가씨가
참 대단해 보였다.. 대선배님의 기를 받으며(?) 걷다가, "걷기"의 노하우에 대해서 한 말씀 청했다.
"할 ! 닥치고 걷기나 해!".. 벽력같은 꾸짖음에 잠시 멍하여 정신을 차리지 못하다가..
불현듯 한가닥 빛줄기가 뇌리를 스치며 뭔가 깨달음을 던져주는 듯 했다..
그래.. 걷기로 작정한 길위에서 노하우는 무슨 얼어죽을..
(농담이다)..


4. 든든한 무달님이 뒤를 책임지고.. 더 든든해 보이는 "시원"님이 불가사의한 영도력으로 선두에 서서
일행을 이끌었다.. 덕분에 무사히 일정을 마쳤다.
여사랑님 "관악산트리오"님들도 다들 한걸음 하시고..
재잘거리며 소풍온 듯한 이름모를 가녀린(?) 두 아가씨를 보며
새삼 걷기는 근육과 뼈로만 하는게 아닌듯 했다.. 깡다구가 보통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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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와 씻고.. 바늘 끝을 라이터 파란불에 달구어 소독한 후..
10원짜리 동전만큼 부풀어오른 왼쪽 발바닥 물집을 찔러서 물을 뺐다.
다음주 정동진 1박2일 코스에 지장없길 빌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