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

사진 몇 장을 들여다 보며..

권성재 2008. 8. 28. 19:26
012345

1. 사색의 길
2. 참매미
3. 이..멍미
4. 나팔꽃
5. 상사화
6. 멍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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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색의 길

집근처 은평구립도서관 들어가는 길목
내 맘대로 "사색의 길" 이라고 이름 붙여봤다.
일정간격 놓여있는 침목을 밟고 지나가게 되는데
그 간격이 묘하다..
..
한걸음에 하나씩 밟으면 너무 좁아서 걸음이 답답하고
그렇다고 두개씩 밟으려면 다리가 너무 벌어져서 걷기 힘들다.
하나씩 편하게 밟으려면 걷는 속도를 아주 느릿느릿 해야하고
두개씩 편하게 밟으려면 다리를 힘껏 벌리면서 급하게 걸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보통대로 어정쩡하게 걸으면 한걸음은 나무 위에
이어지는 한걸음은 나무와 나무 사이 움푹 파진데 빠지게 된다.
..
급하게 빨리 걸으면 힘만 든다.
도서관을 그리 빨리 갈 이유가 없다.
조금 전까지의 속도를 어쩔 수 없이 늦춘다.
천천히 할아버지 산책하듯 걷는다.
다리가 느려지니 팔도 느려지고 온몸이 느려진다..
몸이 느려지니 눈도 느려진다.
눈이 느려지니 이전에는 있는지도 몰랐던 감나무가 옆에 서있다.
눈이 느려지니 생각도 느려진다.
생각이 느려졌다기 보다.. 생각하는 나를 생각하게 된다.
어쩌면.. 몸이 느려지면서.. 생각은 더 빨라진건 지도 모르겠다.
아니다..
생각이 빨라진게 아니라.. 생각의 용량이 늘어난건가?
생각의 저장공간이 늘어나고 그 공간을 이용한 프로세싱이 활발히 이루어진다.
근육운동에 소모되던 자원을 생각쪽으로 더 많이 할당하게 된다.
이른바 사색을 하게 된다.
..
느림..
..
적응을 하게된다. 몸이 변화하면 마음도 따라가고
마음이 바뀌면 몸도 조금씩 바뀌게 된다.
또 한번.. 내 삶의 조급함을 되돌아 보게 된다.
정량화 해버린 시간을 타고 과거에서 흘러온 삶의 긴장감이
불안스럽게 미래를 "현재화"시켜버린다.
이건 미래가 미래가 아니고.. 과거가 과거가 아니다.
이건 현재를 살아가는 것도 아니다..
난.. 어디있나.. 무얼 하는건가..
..
느려지면 편안하다. 사고가 깊어진다.
깊은 사고를 하는 .. '나'라는 인간도 꽤 성숙한 듯 착각이든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점점 불안으로 변해간다.
제어되지 않는 생각의 미친듯한 질주에 겁먹게 된다.
희망사항이 상상으로.. 공상이 망상으로 널뛰기를 한다..
도리질을 하고 다시 눈에 힘을 주고 아무거나 볼거리를 찾는다.
다시 다리에 힘을 주고.. 다시 몸에 힘을 주고..
괜히 더 움직여서 할거리를 찾는다.
생각을 떨쳐버리려고 발버둥친다.
다행히 움직이면 쉽게 생각의 흐름은 변해간다.
..
인간은..
몸을 위해 생각을 이용하기도 하고
생각을 위해 몸을 이용하기도 한다고 여기고 싶겠지만..
사실은.. 뭔가를 위해..
몸을 견제하기 위해 마음이 집어넣어졌고
마음을 견제하기 위해 몸으로 묶여진 거겠지..
..
몸없는 영혼이 있다면.. 어떨까..
영혼없는 몸이 있다면 그또한 어떨까..
..
그 상태가 못견디게 고통스러워서.. 혹은.. 심심해서..
이 인간 노름을 하게 된건가...
알 수 없는 일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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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참매미

집근처 산기슭에서 한마리 잡았는데
어린시절 시골에서 보던 놈보다 훨씬 작다.
찾아보니..
어릴 때 잡았던 건 매미중 제일 덩치가 큰 '말매미'이고
이건 아마 '참매미' 같다.. 아님말구..
..
어쩌다가 맨손으로 잡히냐..  나보다 더 어리버리한 놈이구나..
한여름 뜨거운 태양의 양기 가득 받으며..
참한 암매미 꼬셔서 어떻게 해보려고
악에 바쳐 세레나데를 불러제키다가 정신줄을 놓고 있었던 모양이구나..
그래도 걱정마라..
철없던 시절에 그랬던거 처럼.. 머리, 날개, 다리, 꼬리를
아무 생각없이 야발야발 뜯으며 가지고 놀기에는
너무 지나친 사회화로 겁쟁이가 되어버린 모양이다..
..
진짜인지는 모르겠는데..
내 저장장치 제일 첫머리 부근에 기록된 기억 하나가 떠오른다.
뭔짓을 해도 이쁘게 봐줄 수 있을 만한.. 한 대여섯살 쯤 나이였을거다.
그때도 햇빛 가득한 한여름 오후쯤..
집옆, 녹음우거진 커다란 플라타너스 나무가지에 붙어서 온동네를 시끄럽게 하던
매미 한마리를 발견하고는..
낮잠자고 있던 아버지한테..  아니.. 아빠한테
달려가 잡아달라고 떼를 썼었다.
..
..
아버지한테 살갑게 다가갔던 적이.. 언제가 마지막이였던가..
가끔 시골 갈 때마다.. 그냥 형식적 인사.. 뻔한 안부..  의도적 외면..
중학교 졸업 이후로 두눈 마주 보면서 진지하게 얘기했던 적이
있었던가?
언제부턴가.. 아버지가 하시는 말씀은.. 그냥 예예 그러면서
수긍하고 받아들이는 척 하는게 습관처럼 되어버렸다..
사실은 잔소리로만 생각하면서.
그래야만 잔소리가 일찍 끝난다고 여기면서.
점점  왜소해지시는 풍채가 눈에 밟힌다..
..
..
누구나 그랬듯이..
그때는 떼를 쓰면 모든게 해결됐다..
귀찮았겠지만.. 마지못해 아빠는.. 뻣뻣한 소꼬리털 하나를 뽑아서
동그랗게 올가미를 만들어 긴 막대기에 매단 후..
Y 자로 벌어진 커다란 플라타너스 나무에 가볍게 올라가셨다..
기다란 다리를 양가지에 벌려 디디고
한손으로 나무가지 잡고 한손으로 매미채 들고..
농사일로 단련된 구릿빛 근육의 커다란 팔둑이 불룩거린다.. 멋있다..
가지를 밟고 있는 굵은 장딴지도 꿈틀거린다..
아빠의 임무완수를 터럭만치도 의심치 않으면서도..
고만고만한 삼형제가
나무 아래서 침을 꼴깍 삼키며 쳐다본다..
목이 아프다.. 그래도 참아야한다.
..
잠깐 동안의 정적감..
매미의 외마디 자지러지는 비명소리..
햇빛에 반짝이는 맑은 오줌줄기 한가닥을
내 머리 위로 뿌려대며 반항을 해보지만..
결국 올가미에 걸려 파르르 떤다.
만세를 부르며 좋아하는 꼬맹이들..
..
..
그시절..
당신은.. 우리들의 슈퍼맨이었습니다...
영원한 슈퍼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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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이..멍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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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나팔꽃

백일홍.. 하면
옛 조상들의 시 한구절이나 이야기 한토막에 나올 법한
친근한 이름이지만..요즘 우리가 알고 있는 백일홍은 ..
지구 반대편 멕시코 근처에서 자라던 잡초를 개량한 원예용 꽃이란다..
..
사람 눈 즐겁게 하려고 인위적으로 키워진 꽃들은 ..
한번 더 눈길이 가게 되지만..
혼인하던 날.. 태어나 첨으로 예쁘게 치장한 누이의 화려한 얼굴에서
뭔가 낯설고 어색함이 느껴지듯.. 약간의 부담이 실려있다..
암튼.. 이역만리 물건너 시집와서 이젠 당당하게 주민증 부여받아서
잘 적응해가는 백일홍이.. 시골 어머니가 가꾸는 꽃밭 한모퉁이에서
꽃을 피웠다..
..
모여인 덕에 인연이 닿은 ..
보라색 나팔꽃 한 덩굴이 가볍에 감고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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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상사화

이런 느낌이 좋다..
꽃도 그렇고 .. 사람도 그렇다.
얼핏 수수한 느낌이다..
마치 투명화장이라는 거 처럼.. 한듯 안 한듯 한 여인의 얼굴..
그런데 자세히 얼굴을 가져가 보면 참 화려하다.. 이쁘다..
매끈한 각선미를 따라 아래에서 시선이 올라가다보면..
화사하게 미소짓는 여인의 얼굴같은 꽃송이에 다다른다.
파스텔 연한 느낌이라 그런지 
소중하게 감춰온 여인의 은밀한 부위를 떠올리며
잠시 민망한 상상을 하게 한다..
..
봄 여름 내내 진한 녹색의 잎들이 갈래갈래 땅속에서 뿜어져 나오듯
분수모양으로 돋아 있더니.. 여름이 깊어 가을로 기울어지자..
갑자기 잎들은 말라서 사라져버리고 길죽하고 멋대가리 없는 대궁 몇개만 남는다..
결실 하나 못남기고 허무하게 일찍 사그라든 잎을 보고 실망할 무렵..
몸을 불살라 열반에 드는 스님처럼 화려한 절정을 연출한다..
..
정반대로만 여겨 온.. 음탕한 욕심과 성불의 성스러움도..
결국 "둘 아닌 하나"라는 걸  온 몸으로 보여주며
일생을 마치는 꽃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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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멍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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