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

[8월 공식도보] 이렇게 사는 사람들도 있구나..

권성재 2007. 8. 27. 19:12
[8월 공식도보] 이렇게 사는 사람들도 있구나..


잠실에서 출발한 버스가 지루하기 시작할 때 쯤 ..
터널과 구비길을 지나 평평한 길로 내려섰다는 느낌에 창문커튼을 열어저쳤다.
울창한 소나무숲이 저만치 보여  거의 다왔나보다.. 하는데..
좁은길 한고비를 돌아들자 양쪽 시야를 가득 채우며 갑자기 등장한 동해바다..
다들 바다다.. 라고 탄성을 지른다.. 얼마만이냐..
한참 더 달려 큰배가 정박해 있는 듯한 산등성이를 넘어 정동진에 도착..
몇년 전 겨울 기차여행으로 잠깐 내렸다가 바들바들 떨기만 하고 갔었는데..
이번에는 푹푹찌는 계절에 다시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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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진에서 하나뿐일 듯한 정동초등학교 운동장 나무그늘에 내려 점심을 먹었다..
토요일 텅빈 시골학교 ..
두어녀석들이 학교를 지키는 임무를 수행중인지 한귀퉁이에서 놀고 있는데
2000년에  60 주년 기념식수한 기록이 아니더라도 아름드리 향나무가 여러그루 있는걸 보니
작아도 오래된 학교임을 알 수 있었다.
작은 흔적도 안남도록 깔끔하게 식사를 마치고 .. 늦게 개별출발한 사람들을 기다리며
느긋하게 쉬다가 .. 좀 뻘쭘한.. 하나마나한 자기소개를 하고..
50 여명이 주위사람들 시선을 받으며 깃발따라 줄지어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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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익는 냄새..
생의 의무를 다하려는 듯 마지막 절규에 가까운 풀벌레들의 울음소리..
여름도 더위에 지쳐가는  이맘때..
주변 수풀과 아스팔트에 내려쬐는.. 아직은 따가운 햇살에서 노란 가을의 느낌이 묻어있다..
산길 모퉁이 돌아.. 초등학생은 될까말까한 최연소 참가자인  꼬마아가씨가  엄마손을 잡고 
산그늘에 쉬고 있는 무리에 마지막으로 합류한다..
잘 여문 봉숭아처럼 발갛게 익은 고운 얼굴..  연신 거친숨을 몰아쉬고 땀을 흘리면서도
씩씩하게 잘 걷는다..  일동 박수로 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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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곳에 있었더라면 혐오시설로 눈살만 찌푸렸을지도 모르지만
바닷가풍경을 배경으로 나름 운치있게 세워진 한라시멘트 공장인근을 지날 때..
"얼음 많이 넣은 옥수수 수염차.. 아이스티.. 이런 얘기 해도 돼 ?"
옆에서 걷던 분홍옷 아가씨의, 저의가 의심스러운(?) 멘트..
시원님 말대로 물이 제일 맛있다는 말이 절로 나오는 이번 도보..
강원도에도 폭염특보가 연일 내려지는 모양인데..
이틀동안 참가자들이 마신 물이 아마 살수차 물탱크 한가득은 될꺼다..
옥수수티인지.. 아이스수염차인지... 누가 얘기 못하게 했나..
방울토마토 3 개 얻어먹은 정과 착한 몸매 아니었다면 째려봤을지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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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뭔놈의.. 고해성사 같은 짓이냐..
주말마다 교회 가서 반성하고 회개한다는 코메디같은 짓이냐..
무슨..  쓰레기를 쑤셔 넣으려고 하는 짓이냐.. 
분리수거도 안하고 아무데나 무단투기 하려는 짓이냐..
여행을 빙자해 도를 닦으려는 가증스러움이냐..
중독 치료를 위한 또다른 중독이냐..
젠장.. 아직도 힘이 남아도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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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동해바닷물을 지척에서 구경하며.. 23Km 거리가 금방이다.
아직 해도 지지 않았는데.. 벌써 첫날 목적지 망상해수욕장에 도착..
예상에는.. 밤늦게 도착.. 허겁지겁 저녁해결.. 피곤해 지친 단잠.. 이른아침 출발..
이런 강행군을 생각했는데.. 저녁 6시 쯤 망상해수욕장 민박집에 짐을 풀고.. 남은시간 뭐하나..
이럴 줄 알았으면.. 슬리퍼.. 반바지수영복 등 .. 준비를 더 하는건데..
아쉽지만.. 바지만 걷어 올리고  바닷물을 느끼다가.. 모래사장을 걸으며.. 갈매기도 보고..
망중한을 즐기는데..   손잡고 걷는 연인들에게서 들려오는 느끼한 대사.. 
"오빠, 나 저 갈매기 잡아줘"  .. G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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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분들이 정성껏 준비한 저녁을 먹었다.. 다 먹었을 무렵..
"설겆이는 남자들한테 시켜요" .. "남자들이 더 잘해요.."
이런 얘기를 하자  당까치님이.. 설겆이는 각자 먹은거 각자 하면 돼...
그리고 결정적 한마디.. 남자가 니 남자냐.. 핀잔을 주자.. 웃으며 아무도 대꾸를 못한다..
김무달님과 같이 옆에서 늦은 저녁을 먹으며, 속으로 "나이스" 를 외쳤다..
감격에 목이 메어 밥이 잘 안넘어간다..
당까치님 가는 모임에는 꼭 따라 가야겠다는 다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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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먹고.. 잠시후.. 포도, 회무침, 대게  등 푸짐하게 술안주로 한잔했다.
취하고 싶을 만큼 마시고 싶은 좋은  분위기지만.. 아직은 좀 어색하기도 하고..
내일 이어지는 도보를 무시할 만큼 고수도 아니고..
맥주 한두잔 소주 한두잔 먹고.. 몇몇이 같이 조용히 나와.. 파도 보면서 앉아서 얘기하다가..
비몽사몽.. 폭죽소리 들으며 몇시간 억지로 눈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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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저절로 눈이 떠져, 밖에 나와 일출을 기다린다..
하늘과 바다를 가르는 수평선과.. 바다와 명사십리 모래사장을 가르는 해안선..
이렇게 세상은 2 개의 가로줄로 3 등분 된  무채색으로 잠시 있다가..
울긋불긋..먹구름 엉킨 수평선위 일출의 신호를 시작으로..
바다는 푸르러 가고.. 땅은 흰색 고운 모래밭이 되어간다.
이곳 지명인 망상.. 望詳..  망령된 상상이 아니라.. 상서롭게 바라본다는  뜻이란다..
뭐가 상서롭다는걸까.. 아마.. 바다너머  솟아오르는 태양의 기운을 뜻하겠지..
..
..
그 상서로움이 지나쳐서일까..
둘째날 도보는 이른 아침부터.. 탁트인 바다를 왼쪽으로 낀 해안도로 위에서
태양의 강렬함을 피할 데 없이 온몸으로 받으며 시작됐다..
..
절반 넘게 걸었을 때..다들 지칠만큼 지쳤을 때.. 동해시를 가로지르며 걷다가
깃발 든 카미노님이 동해역 기차역사 앞 나무그늘에서 쉬어가려고 자리를 잡았다..
선두에 도착한 사람들이 화장실가려고 역사안으로 들어갔다가 발견한
.. 파라다이스 ..
화장실옆.. 에어컨 빵빵한 휴게실..  시원한 생수까지.. 한번 들어온 사람들은 의자를
차지하고 나가지 않고.. 뒤따라 오던 사람들도 계속 들어와.. 바닥에 앉거나 눕는다..
물통을 채우고.. 간식을 먹는다..  순식간에 역사가 소란스러워진다..
한두명 있던 기차타려던  손님들이 의아하게 쳐다보고
거기 직원이 혹시 "기차역 습격사건" 이라도 벌어지지 않을까 근심스레 들어왔다가
인간들 행색을 보니 그럴만한 위인들이 못된다고 판단했는지 그냥 나가버린다..
공공기관 건물이 이렇게 반가울 수가..
이럴 땐.. 국가에 세금내고 사는 보람이 있다고 해야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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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네는 좀 특이하다.
경복궁의 정동쪽, 동대문의 정동쪽, 남대문의 정동쪽, 심지어.. 남한산성의 정동쪽까지..
서울의 정동쪽임을 유난히 강조한 팻말이 많다.. 정동진 여행홍보의 성공 탓이겠지..
"은평구 불광동 238-11번지" 의 정동쪽을 기리는 기념비는 세워주면 안되나..
우리집안 식구들  거기로 매년 놀러가고..
자손대대로  지자체장의 덕을 칭송해 줄 수도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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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평동 산업도로를 따라 고개를 넘으니 멀리서 우리가 타고온 또 타고갈 고속버스가 보인다.
이제 걷는 것도 끝났다는 뜻이다..
아담한 모래밭 추암 해수욕장 옆.. 배용준인가.. 유명한 모 드라마 찍었다는
민박집겸 카페에서 마지막 식사를 했다..
식사 후 해당화 핀 촛대바위에 올라 느긋한 휴식.. 시원한 전망.. 아무생각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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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 때마다.. 제일 분주한 사람은 당까치님과 오래된 듯한 여성회원님들..
이번에 처음 얼굴 뵌 "솔낭구" 대장님도.. 찜통 들고 일을 거드신다..
들리는 말로는 .. 솔낭구님과 당까치님이 부부사이고  식당업을 하신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매끼 식사가 군대보다 더 깔끔하고 신속하게 마무리된다..
보통은 높으신 분은 구경이나 하고.. 아랫사람이 궂은 일을 하는데..
여긴.. 오히려.. 대장님 부부가.. 집안의 큰일치르며 손님 접대하듯 한다..
이분들이 이렇게 인도행에 정성을 쏟는 이유도..
다 운영진들과 회원들이 자발적으로 열심히 따라주고 믿어주어서 가능한 걸지도..
거기다가.. 같이 힘든 고생을 겪으면서 쌓인 인간적인 정 같은 걸지도... 
15000명 넘는 회원이 그냥 마우스 잘못 클릭해서 자동 가입된 건 아닐꺼다..
다 이유가 있는지도..  (속보이는 아부성 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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