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

양수리 밤샘도보 하고 나서..

권성재 2007. 8. 20. 00:16
1. 8월 11일 토요일 오후 6 시 반 ..
첫 도보로 택한 양수리 야간 도보 모임장소인 청량리역 대합실..
어디들 있나 한참 두리번 거렸지만.. 단체모임 비슷한 무리들은 전혀 안보이고
대합실 중간쯤 등산복 입은 두어명이 의자에 앉아 있어서..
혹시나 하고 다가가려는데 ..
그중 엷은 미소를 한 여성분이 먼저 알아보고 손을 흔들며
"인도행 ?? " 하고 말한다.. "예.. 안녕하세요"..
"어리버리해 보이는.. 인도행 카페 회원인 줄 알았습니다..."
"아.. 예"..
어리버리라는 공통분모를 가진 듯한
"나"와 "인도행"의 정체성이 조우한 역사적(?) 순간이다...
이 참에 닉네임도 "어리버리"로 바꿔버려?


2. 비 개인 여름밤 은하수 아래로, 낯선 아스팔트길을 낯선 사람들과 줄지어 걸어가며..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같이 가라" 는 아프리카 속담을 다시 생각해 본다.
빨리 갈 일도 없고.. 멀리 갈 곳도 없지만.. 적어도.. 무해한(?) 사람들에게서
느끼는 편안함.. 번잡한 "얘기"가 필수가 아닌 양념일 뿐일 듯한 분위기..
멀쩡한 두다리.. 분명한 목표.. 멀리 가는데 별로 부족함이 없을 듯...
길 따라 크게 한바퀴 돌아 북한강 강변 도로를 끼고 이어진 지루한 막바지 코스에서는 ..
평소 쓰지 않던 다리 근육가닥이 자신들의 존재를 격렬하게 항변한다..
평소에도 잊지말아 달라고..


3. 양수리.. 양평댐 상류.. MT 등 놀러 자주 가는 그곳이.. 한자로 兩水 였다..
거기 유명한 "두물머리" 라는 곳도.. 북한강 남한강의 거대한 두 물줄기가 합쳐지는
곳이라는 뜻에서 지었으리라..
새벽 4 시가 넘은.. 아직은 깜깜한 시각.. 도보행을 끝내고 두물머리 산책길 끝 휴식터에서
잠시 쉬다가 .. 서로 둘러서서 인사하고 피곤한 몸을 추스려 각자 뿔뿔이 헤어졌다..


4. 그냥 가기엔 뭔가 미진한 느낌.. 얼떨결에 내 제안으로..
오늘 모임 이끄느라 수고하신 "피치"님과.. 짬뽕을 열라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모호한
묘령의 여인과 같이 의자에 다리 걸고.. 아침 노을을 보고 가기로 했다..
한 30분 지났을까.. 군데군데 낮은 먹구름의 한쪽 뺨이 발그레 물드는가 싶더니..
연분홍 치마를 펼치듯 점점 퍼져서 .. 파스텔톤 총천연색의 커튼이 하늘을 덮는다..
붉기만 한거 같더니.. 어느새 하늘은 새파래 지고.. 구름도 뽀얀색을 더한다.. 어질하다..
태양이 아직 산아래 한참 숨어 있을 듯한데도.. 눈이 부시다..
수많은 저녁노을 아침노을을 봤지만.. 이처럼 황홀한 장관은 처음이다..
말문이 막혀 눈을 떼지 못하는데.. 김밥이 목에 넘어가나..
야간도보 내내 어둠속에서 홀대받은 시각이 두물머리 동녘하늘의 찬연한 아침노을을 통해
과분한 보답을 받는다..
나름, 오늘 도보여행의 진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