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

9/15~16 충주~문경 밤샘도보 62Km

권성재 2007. 9. 17. 14:37
[9/15~16 충주~문경 밤샘도보 62Km ]

호랑이에게 물려죽은 귀신을 "창귀"라고 한다.
불쌍하게도 이 창귀는 죽어서도 호랑이 기세에 눌려 자유롭지 못한데
산 사람들을 호랑이가 잡아먹기 좋은 곳으로 홀려내는  따까리 짓을 한단다.
이런 호환을 막기위해.. 호랑이가 먹다남은 사람뼈를 태워묻은 후 돌무더기를 쌓고
그위에 시루를  덮어놓는 "호식총"이라는 무덤을 만들어 놓으면
창귀가 접근하지 못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백두대간 호랑이가 극성인 깊은 산속 마을 근처에는 깨진 시루를 뒤집어 넣고
밑바닥 구멍에 뽀족한 쇠꼬챙이 같은 걸 꽂아 놓은 곳이 많았다고 한다.
..
영남지방에서 학문을 닦은  할배의 할배의 .. 할배들이 청운의 꿈을 품고
짚신타래 묶은 괴나리 봇짐지고 떠난 한양 과거길에 반드시 넘어야만 했던 고갯길..
어떤이는 사모관대에 꽃가마타고 금의환향하였을 것이고..
대부분은 낙방의 슬픔을 안고 쓸쓸하게  되돌아 왔을 길이겠지만..
고개를 넘기도 전에 호랑이 밥이 되거나.. 포악한 산적을 만난  운없는 할배들도 많았겠지..
학정을 피해 산으로 숨어살았던 이들과 목숨걸고 산을 넘어야했던 장사꾼들의
애환이 담긴 .. 새도 쉬었다 간다는 문경새재가 이번 밤샘도보의 주코스였다..
..
수안보를 뒤로 하고 소백산맥을 무지막지하게 관통하면서 뚫린 이화령터널 덜 가서
우측 샛길로 빠진후..  지금은 거의 차가 다니지 않는 옛날 고갯길로 접어들었다..
구절양장..
나역시 청운(?)의 헛꿈에 휩쓸려  
가파른 산줄기를 억지로 깍아서 만든  꾸불꾸불 아스팔트 포장된 이 옛길로
털털거리는 서울행 버스타고 넘어갈 때
차창밖 산아래 아찔한 광경과.. 뱃속 남은 음식물의 몸부림에
소리없이 비명을 지르면서 지나갔던 기억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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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고가는 야광봉이 뻘쭘할 만큼
지나가는 차량 하나 없는 2 차선 아스팔트길을 독차지한 인도행 사람들..
비를 곧 뿌릴듯한 먹구름 가득한 하늘..  
점점 고도가 높아져 가면서 그 구름이 밤안개 처럼 일행을 둘러싸는데..
이렇게  끝도 없이 계속 걸어가다가 어느 한구비 돌아서면
돌연 밝은 하늘이 열리고 기화요초 가득한 무릉도원에라도 도착할 듯한..
옆에서 걷던 어느분의 말처럼 "몽환"적인  분위기에 취해
가파른 언덕길이 힘든줄도 모르고 걸어오른다..
..
한참 우회전 좌회전을 반복하며 올라가다가..
이곳 지리를 잘아시는 원추리님의 길안내로
왼쪽 조령산휴양림 표지판 적힌 곳으로 다시 빠진다.
잠시 내리막길을 내려가는듯 싶더니 금새 더 가파른 언덕길이 시작되고
어둠속에서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늘어선 길을 한참 더 올라가서
이화여대 수련원인지 널찍한 주차장 입구에서 잠시 휴식..
휴식 후 조금 더 가니 아스팔트 길이 끝나고 납작한 돌로 포장된 휴양림 산책길이
이어진다.. 그 높은 곳에 들어선 상가건물들을 지나자
가로등불빛 하나 달빛별빛 하나 없는..
전등을 끄면 한치앞이 안보이는 깜깜한 산길..
..
멀리.. 악에 받힌듯 여우 짓는소리와 산비둘기의 으스스한 울음소리가 들리고
우거진 수풀 뚫고 어렴풋이 비치는 별빛에.. 저만치 나뭇가지라도 괜히 흔들리면
발톱세운 호랑이나  한많은  귀신 아닌지..
온몸에 소름돋으며 겁에 질렸을 옛사람들의 모습이 상상된다.
..
..
고갯길 정상부근에 있는 제3관문 아래에서
가지고 있는 손전등을 모두 모아서 조명을 만든 후 휴식..
벌써 시간은 새벽으로 달려간다..
막걸리로 목을 축이고 과일 한조각 먹으면서..
이 시간대 이 사람들과 이 자리에 있다는 사실에.. 표현하기 묘한 감정들을 서로 느낀다.
..
이제부터는 계속 내리막..
돌길이 끝나고 맨발로 걷기 좋다는 마사토 흙길이 한참 계속되고..
중간중간 길따라 위치한 볼거리를 소개한 안내팻말을  손전등으로 비춰보며 지나간다.
2 관문 지나 1 관문 거의 다 왔을 때..  왕건 드라마 촬영세트장이 나온다.
출입을 막는 울타리도 없고 지키는 사람도 없고 자물쇠로 잠겨져 있지도 않고..
중앙 왕궁건물에 문열고 들어가 ..  손전등 조명으로
옥좌에 올라 임금 흉내내며 한사람씩 사진을 찍었다..
..
동굴탐험대도 아니고.. 심야의 문화재 절도범도 아니고..
아직 새벽 여명도 채 밝아오지 않은 시각
손전등에 의지해 구석구석 구경을 하며 돌아다녔다..
세트장으로는 세계 5 번째 안에 드는 규모라는데..
TV 에서 보던 고려 왕궁 건물만 있는데 아니라..
고관대작의 저택과 백성들의 초가집등.. 생각보다 방대한 규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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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먹을 때 자기 밥그릇의 밥이 계속 줄어드는 걸 화내는 바보처럼
오늘 걷는 이 길이 일찍 끝나버릴까 한발작 한발작이 아까운
산행겸 도보행이었다.
한밤의 고요 속에서 어둠이 가져다주는 묘한 상상력이 더해지면서
화려한 빛의 자극 못지않은 여흥..
햇살에 단풍 화려한 시절 꼭 다시 한번 와보리라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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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한 물소리를 들으며 문경새재 관광지 개찰구를 나와 주차장 옆을 지날 때
어제부터 계속 차타고 스토킹 해오던 여사랑님이 부른다..
주차장 한쪽 가로등 아래에서  일행들 먹일 닭죽을 한통 가득 끓여놓고
바닥의 한기를 막아주는 스티로폼과 매트리스로 넓직하게 앉을 자리까지 펴놓고서..
여사랑님이 토끼풀님의 창귀인지.. 토끼풀님이 여사랑님의 창귀인지..
아니면 우리 모두가 인도행의 창귀인지..
..
어제 충주에 도착해서 터미널 2 층에서 간단한 저녁을 먹고 있는데
근처 사신다는 까치밥(까치발? 까치집?.. 기억이..)님이라는 아가씨가 마중을 나와서
초코렛과 바로 먹을수 있도록 깍아서 포장해 놓은 과일등 한보따리  사다주고 갔다..
또 수안보의 네온사인 화려한 온천단지를 옆에 끼고 걸어가다가 잠시 쉴 때는
닉네임은 모르겠지만 회원 한분이 차타고 먹을거리를 준비해서 격려 해주고 가신다.
겉으로는 토끼풀 소화님의 협박에 마지못해 나온듯 하지만.
덕분에 산행 내내 마실거리 먹을거리 걱정이 없었다.
어쩌면 가장 어려울 수 있는 이번 코스를 이분들의 정성으로  
가장 호사스럽게 걸은 지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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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먹은 그릇을 여사랑님 혼자서 물길어 와서 설겆이하는 걸
그냥 바닥에 등붙이고 누워 미안시럽게 생각만하며 쉬다가
다시 출발하려는데 비가 오기 시작..  
각자 비옷을 꺼내입고 출발.. 알록달록 무지개 남매들..
태풍이 몰고오는 비답게 세차게 내리고.. 신발과 아랫도리는 금방 흠뻑젖었지만
기분은 좋다.. 덮어쓴 판초와 길바닥에 빗방울 때리는 소리..  
멀리 산꼭대기에 걸린 비구름.. 비에 젖은 길가 풀잎들..
과수원 사과나무에 처지게 열린 탐스런 사과 하나 따먹고 싶은 마음 간절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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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한 "아줌마"라는 푸른바다님과 세상구경님 거기다가 토끼풀소화님이 함께 있으면..
.. 누구도 이들을 당할 순 없다..
5~60Km 의 밤샘도보도 워밍업일 뿐인지..
소백준령의 정기를 받고  든든한 아침밥까지 먹어선지..
더 풍부해지고 더 현란해진.. "언어교환기술"
가끔 가다가 유탄이 주위로 튀는데..
여사랑님이야 전혀 꺼리낌없이  맞드라이드를 날리고..
원추리님도 특유의 허허실실 전략으로 노련하게 응수하는데..
숫기없는 총각들은 실없는 웃음만 남발하며 속수무책으로 농락당한다..
능이버섯 할아버지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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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추리님의 수지침과 우황청심 먹어가며
평소실력의 절반도 발휘못한 어쩌께 님이 아니었더라면..
그칠 기미가 전혀 안보이는 빗줄기가 아니었더라면..
문경읍 대로변 넓직한 정자마루에서.. 필히 삼겹살이 구워지고
소주잔이 돌았을텐데..
어색한 자태로 그 옆에서 술시중 드는 아찔한 순간을
간신히 모면하고 서울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