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

벽소령의 나방이 예쁘다.

권성재 2006. 7. 10. 11:31
아직 채 가시지 않은 50여년 전 빨치산의 한이 섞일리야 없겠지만,
산 아래에서 치올라오는 비안개가 바람을 타고 벽소령 산장을
요란하게 쉼없이 때릴 때는 이미 굵은 빗줄기로 변한 뒤다.

새벽 5시,
어스름보다 더 부지런한 산행객들은 서둘러
비옷을 뒤집어쓰고 기상특보로 산행금지가 된 능선을 뒤로하고
하산길로 들어선다.

비바람에 휩쓸려 누웠다 일어서는 초목을 보며 멍하니 있는데,
참새 여러 마리가 재바른 날개짓으로 굵은 빗방울에도 아랑곳없이
산장근천 나무가지에 폴폴 날아다니더니
밤늦도록 불놀이하다가  현관 천장에 붙어 새벽잠을 즐기고 있는
나방 한마리를 잠수하는 듯한 동작으로 잽싸게 물고 나간다.

눈여겨 보니,
나방이 참 예쁘다.
날개에 예쁜 문양을 하고 이중날개를 달고 있는 놈은 호랑나비 보다
더 크고 화려하다. 흡사 연채색 동양화 일부분을 그려놓은듯.
검은색 가까운 짙은 갈색에 노란 줄이
깡패 얼굴의 칼자욱처럼 선명하게 그어진 놈은 인상깊다.
퉁퉁하고 못생기고 알레르기나 일으킬거 같은 가루를 날리는 내 기억속의
나방이 아니라, 외려 나비보다 더 예쁜 나방을 봤다.
지리산 덕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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