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

참 희한하다..

권성재 2008. 4. 11. 18:47
지난 주 시골갔다가 올라올 때
어머니가 바리바리 싸준 짐 속에 배추와 상추가 약간 있었다.
양지바른 밭 한쪽에 비닐하우스를  만들어서
겨울이 채 끝나기도 전에 씨를 뿌리고..
매일 부지런히 관리하신 덕에 거의 일년 내내
싱싱한 푸성귀를 넉넉하게 뜯어먹을 수 있다.
말 그대로 유기농 식품.. 웰빙 식품이다..
..
서울와서 그냥 냉장고에 넣어두고 잊어버리고 있다가
오늘 문득 생각이 나서 꺼내보니
시들어서 한줌밖에 안되게 쪼그라들었다.
버려? 하다가.. 큰 그릇에 물붓고 넣어두었다.
오후에 봤더니..
그릇이 가득차고 넘칠 만큼 다시 부풀어 올랐다..
섬유조직이 물을 흡수해서 금방 밭에서 딴 듯 싱싱하게 변했다..
신기하다..
..
어린 시절 한 기억이 떠오른다..
너무 늙어서 달걀을 못낳는 양계장의 닭.. 이른바 "폐계"를
닭장차에 가득 싣고 시골 동네 마다 다니면서
헐값에 주민들한테 파는 사람들이 있었다..
고기가 질겨서 육가공 공장으로는 못보내고 .. 그렇다고 그냥 살처분하기는
아깝고.. 그래서 한마리에 천원도 안되는 싼값에 팔았다..
우리집에서도 대여섯마리 샀었는데..참 몰골이 비참했다..
목 주위 털이 다 빠져서 벌건 속살이 상처가 나서 흉하게 드러나고
깃털도 똥이 묻고 듬성듬성 빠졌다. 게다가 좁은 닭장에 갇혀 있느라
운동을 못해서인지 잘 걷지도 못해 그냥 마당에 풀어놔도 도망도 잘 못갔다..
..
암튼..
집근처 돌아다니며 벌레들도 잡아먹고..가끔 할머니가 귀한 쌀도 주고..
달걀 껍질같은 것도 주면서  키웠는데..
두어달 지나자 참 희한하게도..
털이 빠져서 흉칙하던 목주위에 다시 털이 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깃털에 윤이 나면서 햇살에 반짝반짝 비쳤다..
비실비실하던 몸통도 살이 오르고 점점 날렵해져갔다.
동네 다른 닭들과 다를 바 없이 건강해졌다..
더 골 때리는건.. 다시  달걀을 낳기 시작했다는 거다.
사람으로 치면.. 폐경기 지난  할머니가 애기를 낳은 거라고나 할까..
..
..
가.능.성.
봉인된 가.능.성.
스스로 봉인한 가.능.성.
업은 애기 삼년 찾는 듯한 가.능.성.
..
오늘도
몇평 좁은 방안.. 의자에 엉덩이 붙이고..
자판 위에 열손가락 꼼지락거리며..
조그마한 모니터 속으로 눈알이 빨려들어갈 듯..
..
난 시들어가는 냉장고 속 배추쪼가리다..
난 털빠진 늙은 닭구새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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